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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가장 큰 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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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향지기 댓글 0건 조회 65회 작성일 18-10-11 16:10

본문

설교의 기본적인 3요소는 


설교의 토대가 되는 성경본문과 

본문을 연구하여 전하는 설교자

그리고 그 설교를 듣는 회중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개역개정판 한글성경입니다. 

성경원본의 사본과 번역과 수정을 거친 text지요.


구약의 최초 본문은 십계명입니다. 

모세가 3500년 전에 시내산에서 받은 돌비문이지요. 

당시에 히브리어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집트 왕자 시절에 익힌 이집트 상형문자로 기록된 것이 

후대에 히브리어로 번역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람어로 사역하셨지요.

하지만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역시 번역된 책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은 애초에 번역된 책을 다시 필사하고 

필사한 그것을 번역하고 

번역한 그것을 다시 수정한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기록한 책입니다. 

어떤 경험이든 말로 전할 때 100% 있는 그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듣는 사람 역시 아무리 경청을 잘해도 100%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더욱이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동일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면

말로 전하고 귀로 듣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보다 더 큰 한계를 지닌 것이 글입니다. 

말에는 내용과 의도와 톤이 있어 이 모든 것을 감안하여 듣습니다. 

하지만 글에는 의도와 톤이 사라진 채 내용만 남습니다. 

그래서 말보다 글이 올바른 전달을 하기에 더 큰 한계를 갖습니다. 


성경은 글로 된 책입니다. 

성령님이 성경의 저자들을 감동하셔서 기록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글을 읽는 자들도 동일한 감동 없이는 내용만으로 글의 온전한 뜻을 알 수가 없지요.




설교는 한계를 지닌 개역개정4판 성경을 가지고 

설교자가 자신의 능력과 경험 안에서 

해석하여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설교하실 때에도 그 말을 믿지 않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더욱 많을 것이고

교부들은 더더욱 많아지겠지요.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구의 반대편에 살아가는 설교자가

자신이 가진 한글판 성경을 가지고 자신의 한계 속에서 해석하여 설교하는데

믿는 자가 있다는 것은 오직 기적 같은 일입니다. 


성경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지요.

해석의 오류를 감안하면

정작 설교에서 얻는 하나님의 지식은 

가장 온전한 하나님의 지식에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아전인수격 하나님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될 만큼 작은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경배해야 할 만큼 크신 하나님이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설교의 또 다른 한 축은 회중입니다. 

설교하는 환경은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 경험과 느낌과 사고가 전혀 다른 대상들입니다. 

가장 폭이 넓은 회중을 상대하고 있지요.


회중들은 자신의 이해 수준에 따라 설교를 오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엉뚱한 결과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회중의 건강 상태나 심리 상태에 따라 

설교자가 전하는 내용의 5~10% 정도만 듣고 말 가능성도 크지요.


사람들의 집중력은 성인의 경우 7분을 넘기가 힘듭니다. 

어떤 주장이든 7분 단위의 분량으로 쪼개서 전해야 그나마 

바른 전달과 바른 이해를 가능하게 해 줍니다. 

따라서 설교자가 행하는 설교가 3대지로 구성되어 있다면 

한 대지당 7분으로 구성하여 21분 정도로 전할 수 있으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식을 7분 안에 담아 전달하는 능력이 쉬운 것이 아니지요. 


설교는 성령의 나타나심과 그 능력으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은 것이

하나님과 성경 원 저자 사이의 성령의 능력은 인정하더라도

성경본문과 해석자 사이,

설교자와 청중 사이,

청중과 전도대상자 사이에도 역시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다고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성경의 원저자가 100을 이야기한다면

해석자는 70, 청중은 30, 전도대상자는 10 정도 조차도 바르게 전달받지 못합니다.



설교는 지극히 연약한 인간의 행위에 불과합니다.

제한된 능력으로 전하는 제한된 지식일 뿐이지요.

오늘도 살아계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글 속에 사로잡혀 왜곡된 캐릭터로 전하기 십상입니다. 



설교자의 가장 큰 자질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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