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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복음 대화 - 네가지 영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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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향지기 댓글 0건 조회 116회 작성일 21-04-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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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적극적인 복음 대화는 소명을 다시 확인하는 사역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일들은 매우 놀라운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지요. 성령님은 택하신 자들의 마음에 임재하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십니다. 이 모든 사역의 중심에 바로 저와 여러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리시던 모든 만족과 기쁨과 사랑을 넘치게 부여받고 있지요. 복음은 바로 우리가 그 사랑 안에서 모든 만족과 기쁨을 회복하고 우리 역시 넘쳐흐르는 만족과 기쁨을 토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동참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으나 스스로는 낮춰 종의 형상을 입으시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 역시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사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만물이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하셨지요. 이런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는 사역에 있어 다양함만 존재할 뿐 사역의 경중을 따지게 하거나 이를 통해 상하 위계를 만들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부족함이나 욕심이 없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이런 만족과 기쁨을 주시고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능과 지혜와 시간과 물질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신 일들은 모두 하는 역할만 다를 뿐 모두가 다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이루는 어떤 일로 말미암아 비로소 만족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합니다. 이런 결핍된 마음이 과도한 일중독을 만들거나 건강과 관계를 헤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심지어 일을 통해 깊은 성취감을 맛보게 되더라도 그런 만족은 일시적인 기쁨만 주고 또 다시 다른 성취를 이루기 위해 우리를 극한으로 몰아가게 합니다. 결국 일을 통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체 인간은 세상을 경멸하게 되거나 자신을 비관하게 만들지요.

 

적극적인 복음 대화는 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만족과 기쁨이 결여된 채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 대화는 상대가 하는 일에 대해 묻고 일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가장 쉽게는 요즘 하고 있는 일이 잘 되고 있는지를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랑 함께 하고 있으며 사이는 어떤지를 듣고 일을 통해 느끼는 보람이나 스트레스에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시면 됩니다. 복음 대화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기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이룩한 것인지 그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압박하는 스트레스를 파악하여 우리가 하는 일들이 결국 하나님이 주신 자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복음 대화는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에서 생각의 관점을 돌려 일 자체가 주는 영광과 기쁨, 축복에 대해 감사하며 찬양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결코 천한 일이 아니고, 반대로 누구와 비교할 수 있는 특별한 일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면 일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성취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다 있음을 깨닫고 주님 안에서 깊은 안식을 누릴 때 비로소 일에 대한 지혜와 능력도 더 발전할 수 있게 됩니다.

 

4.복음 대화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사역입니다.

창조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류의 전 역사를 다 알려주는 책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인류가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으며 세상 끝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기쁨으로 시작된 이 세상은 비록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망가졌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다시 회복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인간의 모든 생복사화를 주관하시는 분이시기에 언약하신 그대로 온전히 이루실 분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많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들려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지요. 그 분의 약속은 성령님이 강림하심으로 성취되었고 세상 끝 날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위대한 왕권을 가지고 내려오셔서 다스리시는 것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은 사자가 어린 양과 뛰놀고 어린이들도 함께 뒹굴 수 있는 때가 됩니다. 모든 질병과 억압이 사라지고 눈물과 한숨은 기쁨과 찬양으로 변하게 될 날이지요.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기쁨이 가득하고 젖과 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혼인잔치의 축복이 온 세상을 덮게 되는 날입니다.

 

이런 복된 날은 우리의 삶에서도 간간히 누리고 있습니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결혼의 기쁨을 알고 자녀를 통해 새 생명의 축복도 경험합니다. 봄에 심은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맛과 향이 우리의 오감을 만족케 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관계가 좋을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우리 부부를 통해 세상에 비추고 있음을 느끼고 부모와 자녀의 깊은 사귐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짐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은 감탄은 아름다운 자연현상을 보거나 미술작품을 대하면서 느끼게 되는 경탄과 같은 것입니다. 일종의 누미노제 현상으로 인간이 가진 그 어떤 언어로도 그 기쁨과 감격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상태이지요. 그런 경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보다 더 초월적인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게 합니다.

 

세상은 종교로 인해 망할 것 같이 떠들어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 앞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성과 과학으로 보다 더 찬란한 미래를 만들 것 같이 우리를 현혹해도 우리의 깊은 갈망은 언제나 초월적인 곳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깊은 갈망을 이루기 위해 고행의 길을 걷거나 자신의 육체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거짓된 신들에게 속아 무당에게 찾아가고 부적을 지닌 채 살아가며 나무나 돌에게까지 경배하게 되지요.

 

적극적인 복음 대화는 이 땅에 임할 위대한 왕이시며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갈망하도록 돕는 사역입니다. 온 우주에 가득 찬 하나님이 한 뼘 인간의 모습이 되어 구유 안에 쏙 들어가실 정도로 작아지신 것은 우리의 시선에 함께 눈을 맞추시려 오신 것입니다. 가장 작고 연약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나 가장 위대한 일을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고 예배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을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에게 예배와 찬양, 성찬과 나눔, 선교와 교제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단순한 일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초월적인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복음 대화를 통해 이런 초월적 경험에 대해 나눌 수 있습니다. 예배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기도 생활은 어떤지, 소그룹 활동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있고, 선교에 어떤 참여를 하고 있는지를 나눔으로써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다시 오실 주님에게 고정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혹여 특별한 사정으로 영적인 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이에 도움이 될 만한 단체나 사람을 소개시켜 줄 수 있고, 자신이 하고 있는 소그룹에 초대하여 함께 할 수도 있겠지요. 함께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도 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양한 도구들이 이런 일들을 보다 더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갖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팬데믹이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고 일에서 깊은 좌절을 경험하게 하며 인간을 점점 고립된 구석으로 몰아가 결국 스스로 생을 포기하게 몰아부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팬데믹은 종교에 더 깊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줌과 같은 다양한 도구들도 지역을 뛰어넘어 연대가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면서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가 깊어지게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주어진 많은 시간들은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통과하면서 서로간의 더 깊은 대화가 가능하게 만들었고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복음 대화의 환경이 조성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런 기회들을 활용하여 가족관의 관계를 돕고, 개인의 내면을 정돈하며, 자신의 소명을 다시 확인하게 만들고,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명절에 올라온 사람 중에 헬리인 몇이 찾아와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12:21)라고 청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이 우리도 적극적인 복음 대화를 통해 예수를 만나러 갈 좋은 기회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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