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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복음 대화 - 네 가지 영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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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향지기 댓글 0건 조회 135회 작성일 21-04-2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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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복음 대화 - 네 가지 영역

발안예향교회 전재훈목사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은 성경에 기초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삶의 기본 얼개로 삼고, 살면서 만나는 모든 상황에서 성경의 이야기를 근거로 판단하고 행동하지요. 성경이 쓰이고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삶의 근거와 행동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성경이 모든 상황을 다 기록하였기보다 삶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농사를 지어 살아가던 시대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며 살아가는 시대는 아주 다르지만 삶의 원리는 같았기에 여전히 성경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정할 때 유용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가장 먼저 언급하며 시작합니다.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환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위대한 창조의 힘도 우리가 묵상하고 찬양해야 할 대상이지만 무엇보다 창조의 말씀을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내고 그 의도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삶을 이해하고 살아가는데 더 큰 유익이 됩니다. 그 이유는 힘이 가진 특성상 동일한 힘을 가지지 못한 존재는 힘을 가진 존재를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그 힘을 이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런 두려움과 욕심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감정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을 가진 이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안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그분이 아버지라면 그 품에서 안식할 수 있지만 그가 사장님이라면 늘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하겠지요. 성경을 삶의 토대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의 힘을 묵상하기보다 그 힘을 가지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1.복음 대화는 관계를 바르게 세우도록 돕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홀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계셨습니다. 삼위의 하나님은 서로의 사랑이 충만했으며 그 사랑 안에서 넘치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 계셨지요.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 것이었는지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위대한 창조의 힘을 가지신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하거나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능력과 존재에 있어서도 완전하신 하나님이었지만 만족과 기쁨에서도 완전하셨던 분이 세상을 말씀으로 지으셨던 것입니다.

 

결국 창조의 원리 안에는 관계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자연계에는 상생의 원리가 되었건 약육강식이 되었건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관계의 원리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하지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표현하고 사람 인()자도 그 뜻은 혼자 설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지요.

 

성경이 창조를 묘사할 때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을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놀이처럼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터져 흐릅니다. 그 절정의 순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창세기 2장으로 넘어가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2:18) 관계 안에서 충만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시던 하나님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어 함께 살게 하셨지요. 돕는 배필이란 아담의 일을 보조하는 조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조의 힘을 가지신 하나님이 아담을 도울 때 쓰는 표현으로 강력한 조력자의 의미였지요. 아담은 하와를 보며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부르며 기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 안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평안과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복음 대화가 다뤄야 할 부분 중에 첫 번째가 바로 관계의 영역입니다. 믿음과 신뢰가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어야 할 가족 안에서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상대의 가족의 이야기를 하도록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이 복음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쉽게는 가족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과 취미와 경험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기도나 위로를 전하고, 기뻐할 만한 이야기를 들으면 함께 축하해 주기도 합니다. 만약 상대가 부부관계나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릴 수 있는 깊은 안정과 인정, 혹은 삶의 의미를 가족에게서 찾으려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가족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 혹은 이웃들과의 관계도 물어 볼 수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 다양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만족이나 갈등들을 나누며 때론 같이 즐거워하고 격려하면서 복음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복음 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깊은 만족과 기쁨을 누리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2.복음 대화는 마음속에 담긴 열망을 하나님 안에서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사역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에 이어 인간의 타락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구속받은 사건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인간의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의 역사를 기초로 삼고 있지요. 세상에서는 성악설이 옳은가 성선설이 옳은가 논쟁할 때 우리는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점차 회복되는 과정을 살아간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인간의 과도한 절망과 더불어 과도한 낙관론마저 극복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런 타락과 구속의 기본 얼개를 잊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 심각하게 비관하거나 자만하게 되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기적인 유전자를 언급할 만큼 인간들은 예외 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중심성은 생명을 지키고 보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악과 고통의 근원이 자기중심성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기중심성은 선악과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뱀이 하와를 유혹했고 여자는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3:6)라고 판단하고 따 먹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먹을지 말지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보고 결정하고 말았지요. 이것이 자기중심성의 출발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류는 두려움과 수치심이 마음의 근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완전하신 하나님께 의존적으로 살다가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해결해야 하는 인간의 마음은 두려움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속절없이 끌려갑니다. 두려움과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힘과 권력과 돈에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붙들었던 힘과 권력과 돈은 늘 사람을 배신했고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지요.

 

인간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붙들 때 일어나는 마음의 동요가 교만이거나 열등감입니다. 자신이 충분한 힘과 권력과 돈이 있다고 느낄 때 교만해지고 그렇지 못할 때 열등감이 일어납니다. 교만이나 열등감은 늘 타인과의 비교에서 발생하게 됨으로 자신보다 더 나은 인간 앞에 굴욕적이 되고 자신보다 못한 인간에게는 배타적인 사람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마저 돌이킬 수 없는 어그러진 길을 가게 되지요.

 

마음에 담긴 두려움과 수치심, 교만과 열등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향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신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며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죄인이며 동시에 기대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마음 안에서 강한 담대함과 겸손함을 불러 일으켜 어그러진 마음을 다시 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헐벗고 심한 모욕을 받으시며 큰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마저 외면 받으심으로 우리의 두려움과 수치심을 모두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복음 안에서 두려움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속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적극적인 복음 대화는 두려움과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을 복음으로 이끌어 주는 사역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나눈 후 개인적인 질문들을 통해 상대의 마음에 담긴 두려움과 수치심을 읽어 낼 수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묻고,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불행했던 순간들에 대해 들어보면 그 사람이 자신의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무엇에 의지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질문은 주로 좋아하는 음식이나 운동을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수면상태에 대해 물어보고 잠을 못 이루는 경우는 언제이며 왜 그런지를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담긴 두려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물을 수 있고 가장 최근에 성공한 프로젝트가 무엇이었고 그 일을 통해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상대와 공감대가 형성되면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에 대해 나눌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과 어려움을 대하는 방식들을 듣다 보면 복음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은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짜증에 대해 어느 정도 객관적인 입장에 서 볼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믿을 수 있다면 더 이상 격심한 스트레스나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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